여행記/2016, 쓰촨-동티베트

[8일차] 9월 9일, 캉딩-러샨[樂山]-청두

클라시커 2016. 9. 15. 13:18

9월 9일 금요일.


이날은 모처럼 여유있는 날이었다. 아침의 소란만 빼면.


새벽 2시에 캉딩에 도착해 터미널 근처의 숙소에서 새우잠을 잤다.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러샨으로 가는 버스가 아침 7시 반에 있다고 했다. 바이두에서 찾은 결과가 6시, 7시, 7시 반의 3개 설로 분분하였으나 동네 사람의 말이므로 믿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L은 불안했는지, 아침에 조금 일찍 나가서 표를 사겠다고 했다. 표가 없다면 플랜을 다시 고민해야 했으므로 그러는게 좋겠다고 했다.



조용한 새벽은 L의 비명으로 깨졌다. 표를 사기 위해 터미널로 갔던 L이 러샨으로 가는 버스 출발시각이 7시 반이 아니라 7시니 지금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눈을 떠 본 시계 속 숫자는 6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20분이었다.


아슬하게 출발시간 5분을 남기고 버스에 올랐다. 캉딩부터 러샨까지는 버스로 5시간 이상 걸리는 길이었다. 구불구불한 산악도로를 타며 옆을 보니 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캉딩과 야안을 잇는 고속도로라고 했다. 만약 저 길이 완공된다면 캉딩부터 청두까지 가는데 차량으로 소요되는 시간이 약 3시간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것은 좋지 못한 도로사정이었다. 완전히 오프로드도 아니고, 완전히 포장도로도 아닌 어정쩡한 길의 연속. 베이징에서 쿤밍을 잇는 고속도로('경곤고속도로')나 베이징과 라싸를 잇는 고속철도노선('칭짱철도')이 완공된지 벌써 수 년이 지났고, 이제는 거점 외 주변부에 대한 사회간접자본의 투자를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차와 사람이 닿는 어디든 사천의 강토는 토목공사로 다져지고 있었다. 아마도 다시 십 년이 지나면 이렇게 고생스러운 자동차여행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로마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중앙집권의 기틀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가장 먼저 통치체제에 반영한 제국이다. 원활한 물류는 마치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처럼 필연적으로 정치적 권력의 흐름도 원활하게 한다. 점령지를 중심부와 직결하여 물자와 사람을 실어나르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를 추구한다는 것. 그것이 현대 중국이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식민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러샨에 가는 길에 페이퍼를 꺼내들었다. '오베라는 남자'. 정말 오랜만에 읽는 소설이었다. 나는 평소에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읽은 소설은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마저도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전국시대가 통일되어 가는 과정을 탐색하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판단하기 위한 문화적 출판물로서의 레퍼런스였긴 했다. 시도 마찬가지다. 책 자체를 많이 읽지 않지만 픽션은 그 틈바구니에도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내게 독서란 언제나 레퍼런스를 찾는 과정이었다. 연구를 위해 책을 읽었고, 그러다보니 쓰는 글들도 대부분 정규적인 형식의 글이었다. 말과 글과 생각을 항상 포멀하게 하다보니 스스로를 늘 공식적인 틈 안에 가둬둔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했다. 특히나 - 물론 꼭 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를 몰라 전전긍긍하며 난감해 할 때마다 더 드는 생각이었다. 좋은 선배, 좋은 동료, 좋은 후배는 되었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늘 당황해했다.


물론 논픽션보다 픽션을 더 즐겨 읽는 사람이 삶에서 더욱 감정을 잘 드러낸다는 연구결과는 아직 찾아 읽은 바가 없다. 그러나, 적어도 문화적 배경은 전승된다.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아도 말이다.



러샨 터미널에 도착해서 러샨 고속철도 역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차는 많이 타봤으니 이제 중국의 고속철도를 타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느냐는 L의 아이디어였다. 줄을 서서 표를 샀다. 이때가 오후 4시. 기차를 타야 하는 저녁 7시까지는 고작 세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대불이 있는 낙산대불사로 향했다.


나는 이때쯤에 경치보다는 사람에 집중하고 있었다.




고속철도를 타고 청두에 도착한 것은 8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저녁을 먹고 클럽에 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클럽에 간 것은 12년이었다. 친구가 무슨 홍보대사를 하면서 연 파티에 초대를 받아 간, 신논현역 인근의 클럽이었다. 몰랐던 바는 아니지만 30분만 있다가 나왔다. 이상하게 어두운 곳에서 큰 음악이 흐르며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나는 아직 잘 즐기지 못한다. 물론 그저 익숙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예전의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내가 담배 - 엄밀히 말하면 궐련이지만 - 도 피우고 술도 먹는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변하면서 인생에 적응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지가 관건이지만.



사고를 치고 숙소에 와서 잠들었다. 할 수 있다면 기억을 삭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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