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記/2016, 쓰촨-동티베트

[9일차] 9월 10일, 청두

클라시커 2016. 9. 15. 13:41

9월 10일 토요일.


이날은 실질적으로 청두에서 보낸 날이었다.


스타벅스가 있고, 버스가 있고, 지하철이 있으며 화장실도 어디에나 있고 무엇보다 차량정체가 존재하는 이 곳. 쓰촨 성의 성도로서 충칭 건설 전에는 중국 서부내륙에서 가장 큰 도시. 면죽관에서의 제갈첨의 패배에 이어, 촉한의 마지막을 알린 성도전투가 벌어진 도시. 이 곳은 그런 곳이었다.


L과 K, J는 새벽까지 클럽에 있다 들어왔다고 했다. 나는 상대적으로 일찍 들어왔길래 아침에 일어나 어제 버스 안에서 읽지 못한 소설을 마무리 짓고, 새 책을 펼쳐 들었다. 종이에 비해 읽는 맛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샘들이 있지만, 나는 여행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자책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늦게 들어왔다는 K가 내 부스럭거림에 깼다. 더 자라고 했지만, K는 극구 사양했다. 하긴, 여기서 그냥 자버리면 K가 괜히 K가 아니지라 생각했다. 옷을 입고 나가려니 K가 어디 가냐고 묻는다.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해 산책 겸 숙소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 간다고 했다. 함께 가겠다고 K도 옷을 입었다.




L과 J가 일어난 것은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된 정오 무렵이었다. 시간에 쫓겨 씻는 L와 J를 대신에 체크아웃이 좀 늦어질 거라는걸 프론트에 알리고, 오늘 밤에 J가 묵을 방의 체크인을 마쳤다. 아시아나 직항을 타고 청두에 들어온 우리와 달리, J는 중국국제항공을 타고 베이징을 경유한다. 비행기 시간도 달라서 새벽에 출발하는 우리와는 따로 다음날 오전에 출발한다고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L은 K와 J에게 탄탄면을 먹이고 싶어했다. L은 참 자상하다. 사실 탄탄면, 그거 그냥 한국의 딘타이펑에서 먹어도 된다. 심지어 대만 딘타이펑 본점에 가면 더 맛있게도 한다. 그러나 L은 언제나 우리에게 '여기서 밖에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경험시켜주고 싶어했다. 개인적으로 가속화되는 전지구적 네트워킹이 충분히 논리적으로 예상할만한 수준의 간접경험을 제공하는 시대가 되고 있고, 그렇기에 경험의 특이성 및 비동질성을 강조하는 구시대의 사조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나 뭐 굳이 기특한 생각에 어깃장을 놓을 필요가 없었기에 전적으로 동의해주었었다. 물론 나중에 가서 L이 '내가 하자고 해서 안 좋았던 것이 있었냐?'며 오만하게[각주:1] 따져 물은 적은 있었지만.


디엔핑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근 30분을 걸어 음식점 두 군데를 갔는데 모두 탄탄면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진작 근처에 있는 일반 면관을 갔으면 더운데 고생시키지도 않고, 배고픈 것도 좀 줄일 수 있을 것이었다.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이래서 나는 혼자 여행을 해야 했다. 적어도 새로운 시도에 대한 자유가 있고 그 책임을 나만 지면 되기 때문이었다.



점심을 먹고는 청두의 판다 연구소에 갔다. 판다는 오리너구리, 캥거루와 같이 쓰촨 성의 고고도 지대에서만 사는 특이한 동물이다. 본디 육식동물인데 사냥이 귀찮아서 그냥 주변에 널린 조릿대를 먹기로 작정했다는 동물. 진화론적으로 분명히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중국과 오리엔탈리즘의 대표격인 존재가 되었다.




판다 연구소 이후에는 훠궈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헤어졌다. 공항에 가는 길은 넷이 아니라 셋이었다.



추신 : 흐흐. 아는 체를 했다는 것을 밝혀야 겠다. 판다가 고양이과라고 했는데, 뭔가 석연치 않아서 찾아보니 곰과가 맞다. 원래는 미국너구리과였는데 연구를 통해 곰과에 더 가깝다고 결론이 났다 한다. 학계에서는 아예 레서판다와 묶어 판다과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는데, 어째 레서판다만 식육목 레서판다과로 남고 자이언트 판다는 그냥 곰과로 남아 있다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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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끝이 좋다면 다 좋다는 류의 생각은 이 시점에서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이 논리로 비정당하고 비합리적인 것을 정당화 및 합리화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