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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와 철학사상' 과목의 시험을 위한 끄적거림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미에 대한 관점

클라시커 2008. 10. 21. 00:44

  플라톤의 미학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데아란 일종의 관념적인 세계다. 예를 들어 장인이 사각형의 책상을 만들었다고 했을때, 그것은 이데아의 모방품이다. 완전무결한 사각형 상판을 지니고, 네 개의 다리가 90도로 붙은 완벽한 모양의 책상은 단지 개념으로서 오직 이데아의 세계에서만 존재한다. 플라톤은 모든 사물을 이렇게 보았다. 다시 말해, A란 물체는 허상이며 그것의 본질은 이데아란 이상적 세계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현실이란, 어디까지나 이데아의 모방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회화나 시는 이 현실을 또다시 모방하는 것들이다. 예술품들은 회화보다는 한 단계 낮고 실재(reality)의 세계인 이데아보다는 두, 세 단계나 낮아 존재론적으로 가장 낮은 위치에 있게 된다. 이데아를 모방한 것이라 하여, 현실도 하찮게 여기는 플라톤에게 현실을 다시 한 번 모방한 예술품은 당연히 고려할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플라톤이 회화와 조각을 '환영(illusion)의 창조다, 기만적인 눈속임이다'라며 격하한 것과 달리,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이성적 동물로서 모방을 하는 것은 본능적인 행위며, 모방을 인지하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행위라고 말한다. 예컨대 개의 그림을 보고 그것이 현실의 '개'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일종의 학습이라는 것이다. 곧 모방은 일종의 학습 효과를 창출하고, 그러한 지적 유희가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학습과 경탄은 즐거운 것이므로 그것들과 관련된 모든 것 또한 즐거운 것임에 틀림없다. 예컨대 회화, 조각, 시와 같은 모방작품은, 그것의 모방 대상이 즐거운 것이 아닐지라도 즐거운 것이 된다. 왜냐하면 쾌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모방 대상이 아니라 모방과 모방된 대상이 일치한다는 추론이기 때문이며, 그 결과 우리는 뭔가를 배우는 것이다.

 

  단순히 이렇게만 말할 수는 없고, 기본적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했던 철학의 차이에서 이런 차이가 도출되는 것인데, 지금 수준으로는 도무지 그 방대한 생각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아마도 내일 시험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미에 대한 관점, 헬라스 미술의 시대구분, 단축법, 이집트 미술이 나오려나... 들을 땐 재밌었는데 시험보려니 만만치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