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거의 평생을 함께 하다시피 하는 게 있다. 남편이냐고? 아니다. 바로 생리다. 10대 때 2차 성징의 일환으로 시작되는 생리는, 중년 이후 완경기까지 대략 4, 50년 간 여성의 일생과 함께 한다. 생리는 많은 점에서 여성의 활동을 제약하는데,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생리와 함께 찾아오는 생리통이다. 남자 입장에서 생리통이 어떤지 말할 수는 없지만, 생리통을 전면에 내세워 진통 효과가 좋다고 강조하는 약들이 미디어에 범람하는 현실은 그 고통의 크기에 대해 짐작이나마 가능케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리로 인한 불편함 때문에 학교에 출석하지 못할 경우, 이를 공결로 인정하는 ‘생리공결제’의 도입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생리공결제가 인정되어야 하는 윤리적 이유는, 그것이 일종의 숙명이며 그 숙명을 짊어진 사람이 인류의 절반이라는 사실이다. 생리 기간 중 여성은 수많은 ‘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 여성은 월경전증후군이라고 하여 월경 시작 보름 전이나 일주일 전부터 마치 몸살을 앓는 것처럼 온 몸이 쑤시고 아프거나 두통, 오한, 발열, 부종, 우울감 등의 증세를 호소한다. 이것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라면, 남성의 스트레스증후군과도 별 차이가 나지 않아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증세가 그야말로 ‘달거리’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더욱이 정글의 법칙 속에서, 쉼 없이 사회구성원을 채찍질하여 생산에 종사하도록 강요하는 현재의 사회 모습은 여성들이 이러한 속사정을 시원스레 말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인류의 절반이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바로 생리공결제다.
한편으로는 생리가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도 생리공결제와 같은 사회적 배려가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회 구성원의 충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종의 공리에 해당한다. 때문에 개인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자손을 낳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과업을 수행하는 셈이다. 그런데 생리는 이러한 재생산의 텃밭을 일구는 생물학적 작업에 해당한다. 농부들의 노력이 사회를 보다 풍요롭게 하는데 일조한다면, 사회가 그 농부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리공결제는 이러한 우대 정책의 일환일 뿐이다.
물론 생리공결제의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국민일보의 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에 응답한 여학생의 40% 가량이 생리공결제를 악용한 적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는 생리공결제가 하나의 정상적 제도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성장통이다. 생리는 생리주기라는, 부정할 수 없는 자연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규칙적으로 발생한다. 만약 일선 현장에서, 이를 고려하여 출결 상황을 점검한다면 악용 사례를 충분히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성에 대한 우리의 금기 때문에 학생에게 직접 생리주기를 묻는 것이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한 편으로 이러한 금기를 타파하려 노력하면서 이 제도의 시행을 추진한다면 필시 가까운 미래에는 그 순기능이 더 돋보일 수 있을 것이다.
종종 이 문제가 인터넷 공간에서 양성 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러나 앞서 논증한 바와 같이 인류의 절반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숙명’을 이유로 차별의 가능성을 이 사회가 내버려두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더욱이 그 숙명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면, 그 혜택을 보는 사회가 이를 배려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양성 간의 갈등으로만 이 문제를 국한할 것이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는 과정, 내지는 사회가 진보하는 과정의 일부로 현재의 사회가 넓은 아량으로 이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보면서 글을 마친다.
생리공결제가 인정되어야 하는 윤리적 이유는, 그것이 일종의 숙명이며 그 숙명을 짊어진 사람이 인류의 절반이라는 사실이다. 생리 기간 중 여성은 수많은 ‘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 여성은 월경전증후군이라고 하여 월경 시작 보름 전이나 일주일 전부터 마치 몸살을 앓는 것처럼 온 몸이 쑤시고 아프거나 두통, 오한, 발열, 부종, 우울감 등의 증세를 호소한다. 이것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라면, 남성의 스트레스증후군과도 별 차이가 나지 않아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증세가 그야말로 ‘달거리’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더욱이 정글의 법칙 속에서, 쉼 없이 사회구성원을 채찍질하여 생산에 종사하도록 강요하는 현재의 사회 모습은 여성들이 이러한 속사정을 시원스레 말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인류의 절반이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바로 생리공결제다.
한편으로는 생리가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도 생리공결제와 같은 사회적 배려가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회 구성원의 충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종의 공리에 해당한다. 때문에 개인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자손을 낳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과업을 수행하는 셈이다. 그런데 생리는 이러한 재생산의 텃밭을 일구는 생물학적 작업에 해당한다. 농부들의 노력이 사회를 보다 풍요롭게 하는데 일조한다면, 사회가 그 농부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리공결제는 이러한 우대 정책의 일환일 뿐이다.
물론 생리공결제의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국민일보의 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에 응답한 여학생의 40% 가량이 생리공결제를 악용한 적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는 생리공결제가 하나의 정상적 제도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성장통이다. 생리는 생리주기라는, 부정할 수 없는 자연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규칙적으로 발생한다. 만약 일선 현장에서, 이를 고려하여 출결 상황을 점검한다면 악용 사례를 충분히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성에 대한 우리의 금기 때문에 학생에게 직접 생리주기를 묻는 것이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한 편으로 이러한 금기를 타파하려 노력하면서 이 제도의 시행을 추진한다면 필시 가까운 미래에는 그 순기능이 더 돋보일 수 있을 것이다.
종종 이 문제가 인터넷 공간에서 양성 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러나 앞서 논증한 바와 같이 인류의 절반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숙명’을 이유로 차별의 가능성을 이 사회가 내버려두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더욱이 그 숙명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면, 그 혜택을 보는 사회가 이를 배려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양성 간의 갈등으로만 이 문제를 국한할 것이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는 과정, 내지는 사회가 진보하는 과정의 일부로 현재의 사회가 넓은 아량으로 이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보면서 글을 마친다.
- 총 글자수 1,874자, 2008학년도 2학기 <글쓰기의 기초와 실제> 과제를 위해 작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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