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기가 차다. 때 아닌 땅굴 소동에 '대남 전면 대결태세'는 대체 또 뭐야. 게다가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는 '남북전쟁', - 그걸 백번 쳐봐라, 그래봤자 The Civil War 이상 나오나 - '북한땅굴'과 같은 요상스러운 것들이 줄줄 올라온다.
급격히 '국민'의 안보논리가 강조되는 이 시점에서 국내 최고 사정기관 수장 둘이 그만두고, 한 사람은 그만둘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자리는 이전보다 더 이명박 씨와 가까운 사람들로 채워졌고, 또 채워질 전망이라 한다. 상식적으로 사람을 경질하더라도 그러한 인사이동은 평시에나 일어나야 맞다. 경질될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재직했던 기간동안에 그 조직은 그를 필두로 움직였기에, 급박한 활용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그를 우두머리로 두더라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사정기관의 수장을 바꾼다는 것은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1
북한과 통일이 잘 되지 않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두 사회의 기득권층이 '분단 및 휴전상황'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냥 내 개인적인 이야기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각 사회의 정치권이 결탁하여 체제 대결을 악용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일례로 1972년 여름에 당시 중정부장이었던 이후락이 극비리에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예방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물밑접촉은 '7·4 남북공동성명'이란 어마어마한 결과물을 낸다. 당시를 체험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곧 통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열기가 온 겨레를 떠들썩하게 했던 해라고 한다. 그런데 동년 10월에, 박정희는 별안간 '통일시대를 대비하겠다'며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흉내낸 '유신 헌법'을 선포했다. 그 겨울공화국이 우리에게 주었던 시련이야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들 잘 알리라 믿는다. 이후 12월에는 북한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세습체제를 공고화하는 이른바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한다.
시간이 조금 흐른 1987년, 최초의 국민 합의에 의한 개헌으로 직선제 대선이 열리던 그 해에는 선거일을 얼마 앞두고 그 유명한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한다. 물론 당시 양 김 씨의 분열로 인해 판도가 노태우를 위시한 반민주독재세력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사건은 당시 보수층과 일반 국민의 안보이념을 강하게 자극하여 군인 출신의 노태우가 당선되는데 큰 기여를 한다. 사실 이 사건의 경우,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건 당사자인 김현희를 국정원이 워낙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 진실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고 전해진다. (뭐,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국정원이 그럴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가 '남파공작원'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1997년에는 대선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난다.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음해에는 이른바 '총풍 의혹'이 불거진다. 여당인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김영삼 정부의 정보기관 공무원 몇몇이 북한에 무력시위를 사주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으로 관련자 몇몇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인해 정국이 어수선하던 시점에, 이른바 '여간첩 원정화' 사건이 터졌다. 수사기관에 의하면 그가 '간첩이 맞다'지만, 공작금으로 현금이 아닌 현물을 받았다는 내용이나 그가 북한에 전했다는 소위 '기밀자료'들의 내용이 사실 간첩질하기엔 웃긴 것들이 많아 당시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사건은 이례적으로 큰 '사회적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번의 긴장국면 역시, 이런 역사의 한 줄기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북한이 사이가 안 좋은데 어떻게 이런 밀월관계가 나타나겠느냐'고 따져물을 수 있겠지만, 정치라는 게 꼭 우호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만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긴장 국면에서 북한이 얻을 것도 많기 때문이다. 지금 들어오는 소식들을 들어보면,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것 같다. 1인 독재체제의 매력은, 카리스마를 쥐고 통치를 하던 지도자가 무너질 때에 그 정권 역시 함께 무너진다는 점이다. 자칫 김정일의 실권이 체제 붕괴의 신호탄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권력의 최전선에 선 군부로서는 당연히 이러한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경우에는, 이 긴장국면을 이용해 권력누수를 최대한 차단하는 효과와 포스트 김정일을 대비할 시간을 버는 효과 모두를 얻을 수 있다. 이런 북한의 상황은 당장에 국면을 전환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는 이명박 정부로서도 그리 나쁘지 만은 않은 상황일거라 보인다. 이 정부 역시도 작년 말부터 국면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해왔고,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2
모든 상황을 다 이렇게 음모론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도 상태의 수준과 개념을 따져가며 해야할 것이다.
급격히 '국민'의 안보논리가 강조되는 이 시점에서 국내 최고 사정기관 수장 둘이 그만두고, 한 사람은 그만둘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자리는 이전보다 더 이명박 씨와 가까운 사람들로 채워졌고, 또 채워질 전망이라 한다. 상식적으로 사람을 경질하더라도 그러한 인사이동은 평시에나 일어나야 맞다. 경질될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재직했던 기간동안에 그 조직은 그를 필두로 움직였기에, 급박한 활용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그를 우두머리로 두더라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사정기관의 수장을 바꾼다는 것은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1
북한과 통일이 잘 되지 않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두 사회의 기득권층이 '분단 및 휴전상황'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냥 내 개인적인 이야기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각 사회의 정치권이 결탁하여 체제 대결을 악용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일례로 1972년 여름에 당시 중정부장이었던 이후락이 극비리에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예방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물밑접촉은 '7·4 남북공동성명'이란 어마어마한 결과물을 낸다. 당시를 체험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곧 통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열기가 온 겨레를 떠들썩하게 했던 해라고 한다. 그런데 동년 10월에, 박정희는 별안간 '통일시대를 대비하겠다'며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흉내낸 '유신 헌법'을 선포했다. 그 겨울공화국이 우리에게 주었던 시련이야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들 잘 알리라 믿는다. 이후 12월에는 북한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세습체제를 공고화하는 이른바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한다.
시간이 조금 흐른 1987년, 최초의 국민 합의에 의한 개헌으로 직선제 대선이 열리던 그 해에는 선거일을 얼마 앞두고 그 유명한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한다. 물론 당시 양 김 씨의 분열로 인해 판도가 노태우를 위시한 반민주독재세력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사건은 당시 보수층과 일반 국민의 안보이념을 강하게 자극하여 군인 출신의 노태우가 당선되는데 큰 기여를 한다. 사실 이 사건의 경우,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건 당사자인 김현희를 국정원이 워낙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 진실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고 전해진다. (뭐,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국정원이 그럴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가 '남파공작원'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1997년에는 대선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난다.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음해에는 이른바 '총풍 의혹'이 불거진다. 여당인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김영삼 정부의 정보기관 공무원 몇몇이 북한에 무력시위를 사주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으로 관련자 몇몇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인해 정국이 어수선하던 시점에, 이른바 '여간첩 원정화' 사건이 터졌다. 수사기관에 의하면 그가 '간첩이 맞다'지만, 공작금으로 현금이 아닌 현물을 받았다는 내용이나 그가 북한에 전했다는 소위 '기밀자료'들의 내용이 사실 간첩질하기엔 웃긴 것들이 많아 당시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사건은 이례적으로 큰 '사회적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번의 긴장국면 역시, 이런 역사의 한 줄기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북한이 사이가 안 좋은데 어떻게 이런 밀월관계가 나타나겠느냐'고 따져물을 수 있겠지만, 정치라는 게 꼭 우호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만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긴장 국면에서 북한이 얻을 것도 많기 때문이다. 지금 들어오는 소식들을 들어보면,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것 같다. 1인 독재체제의 매력은, 카리스마를 쥐고 통치를 하던 지도자가 무너질 때에 그 정권 역시 함께 무너진다는 점이다. 자칫 김정일의 실권이 체제 붕괴의 신호탄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권력의 최전선에 선 군부로서는 당연히 이러한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경우에는, 이 긴장국면을 이용해 권력누수를 최대한 차단하는 효과와 포스트 김정일을 대비할 시간을 버는 효과 모두를 얻을 수 있다. 이런 북한의 상황은 당장에 국면을 전환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는 이명박 정부로서도 그리 나쁘지 만은 않은 상황일거라 보인다. 이 정부 역시도 작년 말부터 국면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해왔고,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2
모든 상황을 다 이렇게 음모론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도 상태의 수준과 개념을 따져가며 해야할 것이다.
일기예보 음악이다.
- 보통 사회의 구성원을 이야기할때 '시민'이란 용어를 쓰지만, 국가에 의식구조가 종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는 '국민'이란 용어를 쓰기로 한다. 불행히도 당신과 나, 모두 이 '국민'이란 집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본문으로]
- 현재 북한의 통치라인의 최전선에는 '군부'가 서 있다. 이는 현재 김정일의 공식명칭이 '국방위원장'인데서 알 수 있다. 김일성 사후에 김정일이 집권하면서, 자신의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해 내세운 이념이 '유언정치'였고, 이 기간동안 군부의 위상이 재정립됐다. '선군정치'라는 슬로건은 여기서 비롯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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