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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간 시대와의 대면

클라시커 2009. 2. 25. 01:48

  시절이 수상하다. 비단 이명박 씨와 그 졸개들 때문만은 아니다. 시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과의 이질감 때문이랄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질감이라기보다는 '혐오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역겨움', 그것이 내가 나를 포함한 요즘 사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씁쓸함 중 하나다.

  소위 진보 진영, 더 구체적으로 말해 좌파 진영에서는 오랫동안 가진 금기가 있어 보인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민중과 함께 가야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가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NL, PD 따위의 논리들도 결론적으론 이론가들의 말싸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바탕에는 '민중'이란 허황된 구심체가 있었다. 한국 사회의 좌파가 실천보다는 주의에 경도된 환경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그때로부터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지금도 여전히 '민중중심론' - 이라 쓰고 '민중무류론'이라 읽는다 - 은 유효한 것 같다.

  그 때문에, 여전히 내 주변에 소위 좌파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민중 내지는 시민을 까는 것에 열심히 도리질을 친다. 나도 이해한다. 우리가 외치는 그 민주주의란 단순히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과두정체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링컨이 게티즈버그에 서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민주주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것일 뿐이다.[각주:1]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나는 과연 민주주의란 지극히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가치가 과연 저 '인민'들에 의해서 운영될 수 있을까란 의심을 갖는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나와 다른 인종이라 하여 무조건 범죄자로 보는 나치식 인종주의자들과 공익근무요원/산업기능요원/여자란 단어만 나오면 날뛰는 마초이스트들, 국가란 단어에 사족을 못쓰는 국가주의자와 전체주의자들, 한 인물에 매달려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교조주의자들이 이 땅, '공화국' 내에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보고 있다. 이명박 씨가 반민주적이라 하여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이들이 모인 한켠에는 이 땅에서 불법체류자들을 모두 몰아내고 순혈주의를 이룩하자는 글이 공감수 1위를 달리고 있고 '임신과 생리가 싫으면 홀몬을 투여하여 남자가 되세요'하는 식의 허무맹랑한 덧글이 베플에 올라 있다. (이런 사례들은 이전에도 몇 번이나 이야기해 더 이야기하는 게 민망할 정도다.) 미네르바를 응원하며, '다른 소리도 할 기회를 달라'라 주장하는 이들이 왜 다른 공간에서는 저토록 파시즘에 경도되어 있는 걸까.

  철학이 없는 나라. 순간적이고 즉흥적이며 감각적인 매체가 시민의 뇌리를 파고 든 사회다. 어렸을 때부터 이유도 모른채 앞만 보며 달리느라 사유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그렇게 내몬 비정상적 사회를 탓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자각하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웠단 이유를 그들에게 물어야 할까.

  제목이 거창하다. '대면'이라니. 나는 사실 시대와 대면할 만한 용기는 갖고 있지 못하다. 그저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소회를 가지고 있을 뿐. 여전히 시대는 암울하다.
  1.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 '국민'이란 단어는 개체를 국가에 종속시키는 뉘앙스가 있어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네에게는 '인민'이란 단어가 저 북쪽 동무들이 자주 쓴 탓에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지만, 영단어 people과 상응하는 우리네 말은 어디까지나 '인민'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