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記

돌아오며

2013. 7. 20. 23:30

무작정 긴 글을 쓰기보다는 내용이 있는 글을 쓰기를 바랍니다.


'한 발을 내딛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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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라.

3개월을 죽쑤며 담아왔던 이야기를, 사석이 아닌 공석에 준하는 자리에서 이야기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오늘 그 기회를 우연찮게 잡았다.


앞으로도 그럴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시험기간을 맞아 학습을 하는 한편으로 조금씩 '분노'하는 컨텐츠를 찾아 채워넣어야겠다.


p.s. 좋아서 미치겠는 사람이 있지만, 왠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접자. 접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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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새로운 시작이냐

2012. 10. 3. 23:59

정말 오랜만이다.

블로그보다는 페이스북에 상주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발표되는 생각들은 많아진 대신 그 길이가 짧아지고 깊이가 얕아졌다.

이것이 일종의 트렌드인지, 아니면 내 개인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신중한 반응이라기보다는 '귀찮음'에서 연유한 반응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게다.


여튼, 근 3달 간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했던 것에서 서서히 탈출하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일과 더불어 요근래 나를 얽매왔던 것들과도 작별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들이고 말들이었겠지만

내게는 정말 끌어안고 가기엔 버거운 것들이었다.



훌훌 털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길을 선택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도 좀 더 우울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무엇때문에 혼자서 세상의 모든 고뇌를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되어 버린 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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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에 대하여

2012. 4. 1. 23:14

만난 적이 없으니 물론 헤어짐이란 것도 없으련만, 그래도 헤어져야 할 때가 있다. 심정적으로 말이다. 단순히 짝사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그냥 관계의 단절이랄까. 내색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에게 평소에 가지고 있던 기대나 호감같은 것을 접어 넣는 때 말이다.


그런 경우다. 계속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머릿속에 있던 수많은 리스트들이 정리되고, 봉투에 담겨서 캐비닛으로 차곡차곡 들어간다. 아마도 다시 그 사람들이 나오는 경우는 없을테다. 경험상 그렇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렇다. 나는 당신들이 바쁠 때 써먹을 수 있는 도구같은 존재가 아니다. 나는 당신들 하나하나를 믿고,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당신들을 보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당신들이 '자신의 일'을 핑계로 삼는다면, 나 역시도 그렇게 대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도 이제 더 이상 그냥 소비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미안해야 하나? 흠, 글쎄. 아마 내색하진 않을테니 당신들은 그걸 모르겠지. 그동안 고마웠다. 적어도 한동안 내 마음을 설레게 해주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고마울 것이다. 내 감정을 당신들에게 쏟아부을 일이 없어졌으니까. 감정을 낭비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통진당과 민통당, 두 통합당만의 선거연대인 이른바 '두통연대'가 성사되었다. 두 당이 어떤 이유에서 급하게 녹색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다른 야당들을 따돌림시키면서까지 자신들만의 밀실논의를 '야권연대'란 보기에 그럴싸한 허울로 포장을 치려 드는지는 결과에서 아주 명쾌하게 드러났다.

'두통연대' 합의문에 따르면 가장 낡고 위험하며 즉시 폐쇄해야 할 핵발전소, 고리1호기가 있는 부산 해운대기장을과 후쿠시마 핵참사 이후 신규 핵발전소 부지로 발표된 경북 울진 · 봉화 · 영덕 · 영양 지역구에서 통진당 후보가 용퇴하거나 공천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아주 '공교롭게도' 이 지역에서 후보등록을 한 민통당 소속 후보들은 '찬핵 세력'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결론만 말한다면, 강령에서든 정책으로든 입으로는 '탈핵'을 말하고 있는 진통당이 현실에서는 다른 지역구를 얻기 위한 욕심에 눈이 멀어, '찬핵 후보'를 밀어주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한 셈이다.

심지어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20일에는, 두통연대의 최대 수혜자로 여겨지는 이정희 선본의 단일화 전화 여론조사 조작 정황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기도 했다. 역시나 '두통연대'라는 이름답게 아주 '머리가 지끈거리는'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아무리 강조해봐야 결국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유권자들은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아 껍데기만 남은 권력을 깎아내리기에 바빠, 이 밀실논의를 받들어 모시기에 급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일을 처음 목격하는 것은 아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겠'다시피, 비판적 지지의 망령은 87년 대선에서의 '백선본' 드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에 '민노당 찍는 표는 다 사표'라고 주장하신 현 통진당 공동대표의 이야기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다면 왜 매 선거마다 '나의 정치적 선택'을 '대세'에 눌려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정치적 자살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일까? 다름아닌 선거제도 때문이다. 그 사람이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를 봐야하는 현재 남한의 소선거구 일위대표제 아래에서는 그 후보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더 나아가서는 그 당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다. 단 한 표라도 상대보다 적으면 도로 아미타불이 되는 상황인데, 저 사람과 저 사람이 소속된 당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따위가 대체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선거제도는, 민주주의가 지켜내야 할 '다양성'을 무너뜨린다. 유권자의 측면에서나, 정당의 측면 모두에서 다양한 정견이 실체화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가로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선거제도 때문에 '이기려면 1: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당연해지면서, 녹색당이나 진보신당과 같이 진본적(進本的)인 정견을 가진 이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이들 정당은 한국의 수많은 정당 중 유이(唯二)하게 2030년이라는 명확한 기간을 정해놓고 '탈핵사회'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정당, 불안정노동에 관한 정책을 가장 잘 만든 정당, '(다양한 유형의) 자본이 벌이는 지배'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곘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정당임에도 단순히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해산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여있다.

우리가 흔히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고 부르는 혼합형 비례대표제(Mixed-Member Proportional system)는 우리가 선거에 참여하는 '본질적인 까닭'을 현재의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보다 훨씬 더 많이 충족시켜준다. 정확하게 까지는 아니지만 유권자의 의사라고 할 수 있는 정당지지도와 의석점유율을 어느 정도 맞춰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거제도가 현재의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에서 혼합형 비례대표제로 바뀐다면, 조직표와 돈이 판치는 현재의 정치문화가 정책 중심으로 완전히 바뀔 수 있는 동시에 정치인들의 추접한 사표론에 휘둘려 나의 소중한 정치적 견해를 포기할 이유도 사라지고 소신있는 소수 정당들이 해산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진다. 소수의견을 갖는다는 이유만으로 투표할 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거나, 혹은 소수의견을 갖는 사람들에게 '네 의견은 어차피 죽어버릴 의견[死票]이니 그냥 될 사람 밀어주자'는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모습들이란 말인가?

물론 혼합형 비례대표제가 모든 정치문제를 해결하는 만능키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정치적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편이라는 평가는 받고 있다. 더욱이 이 제도는 이데아 세계에 있을 것만 같은 이상적 제도가 아니라 실제로 독일과 뉴질랜드를 포함한 OECD 30개 회원국 중 대부분이 채택한 제도다.

지금 이 시각에도 무참히 깨지고 있을 구럼비 바위 주변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의 현장에, 금융자본주의의 수탈에 맞서 싸우겠다며 매서운 칼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점령'을 시도한 여의도와 서울광장에, 구미KEC · 재능교육 ·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등지에서 벌어진 노동착취의 생생한 현장에, 최저임금 인상과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는 이런 '삶의 현장'에 요식행위 쯤으로 얼굴을 비춘 사람들에게, 단순히 '힘이 있는 우리편'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표를 주어 먹여 살려야 하는 '표 셔틀'이 되는 것. 이것이 과연 '선거'일까? 이게 사는걸까?


탈'연애'선언

2012. 3. 13. 23:41
하나의 유령이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다, '탈연애주의'라는 유령이.
―― 카를 맑스와는 전혀 상관없음


'사랑'이라는 것은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묘한 감정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가 원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잘 믿지 않는터라, 사회적으로 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기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연애'라는 것이다. '연애'의 한자를 풀어보면 그리워할 연(戀)에 사랑 애(愛)를 사용하여 '사랑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소산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이지 않아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고 하시었다지만 사실 사랑이란 것은 꾸준히 확인하는 것이 도리어 행복감을 준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연애라는 사회적 교감기제는 그 시행 빈도수가 늘면 늘수록, 그리고 그 깊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서로에게 만족감과 기쁨을 준다. 단지 '함께 있는 것', 그 간단한 것이 모든 '사랑하는 자들'이 최우선에 두는 목표였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을 '아름답다'고 말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은 그 양태가 사뭇 달라진 것 같다. 사랑의 목표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 이상이 되었다는 이야기,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이기보다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 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게 되었다. 성적 쾌락에 탐닉해 '몸'만을 원하는 상대가 있다는 것, 혹은 상대의 '재력'만을 원하는 상대가 있다는 것, 때로는 '몸'이 '재력'과의 물물교환 매개가 되고 있다는 것 역시도 이제 더는 이상할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위처럼 급속히 세속화되고 자본화된 '사랑'에 대해 개탄하려거든 애당초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현대 연애'의 또다른 문제는 '계량화'이다. 즉 연애를 해보고 안 해 보고가 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연애의 내용보다도 횟수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연애를 하고 못하고가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말인가? 특히나 한국과 같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끝없는 전쟁터에서 살아나가야 하는 구조에서, 연애란 것이 때로는 사치품과 같게 여겨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많은 사람들은 으레 연애라면 당연히 한 두 번 정도는 해야 하는 것으로 쉽게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러한 경제적 이유 외에도, 단순히 자신의 소신 때문에 많은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빈번한 만남보다는 적게 만나더라도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을 만나 '마음이 움직이는 연애'를 하고 싶은 사람들 말이다. 이렇게 각자의 사정과 개성과 취향에 따라 연애를 단 한 번도 안 해 봤을 수도, 나이에 비해 적은 연애경험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획일화되고 자신들의 마음 속에서 이미 계량화된 연애의 정석을 타인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연애를 해보지 못한 것이, 마치 어디가 좀 '부족해서' 못한 것인 마냥 희화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요구와 희화화를 이미 몇 번 받은 한 사람으로서, 오늘 이 시간을 기해 그러한 '당신들의 시선'은 모두 옳지 않다고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동시에 그러한 편견과 시선에 한편으로는 마음고생을 했던 지난 날들에게도 심심한 유감의 뜻을 담아 고별을 고하는 바이다.

나는 나로서, 내 취향대로, 내가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연애를 할 것이다. 당신들이 요구하는 뻔한 연애 말고, 진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연애 말이다.


진통당과 민통당, 두 통합당만의 선거연대인 이른바 '두통연대'가 성사되었다. 두 당이 어떤 이유에서 급하게 녹색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다른 야당들을 따돌림시키면서 자신들만의 밀실논의를 '야권연대'란 보기에 그럴싸한 허울로 포장을 치려 드는지는 결과에서 아주 명쾌하게 드러났다.

'두통연대' 합의문에 따르면 가장 낡고 위험하며 즉시 폐쇄해야 할 핵발전소, 고리1호기가 있는 부산 해운대기장을과 후쿠시마 핵참사 이후 신규 핵발전소 부지로 발표된 경북 울진 · 봉화 · 영덕 · 영양 지역구에서 진통당 후보가 용퇴하거나 아니면 진통당이 무공천을 한다고 한다. 아주 '공교롭게도' 이 지역에서 후보등록을 한 민통당 소속 후보들은 '찬핵 세력'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결론만 말한다면, 강령에서든 정책으로든 입으로는 '탈핵'을 말하고 있는 진통당이 현실에서는 다른 지역구를 얻기 위한 욕심에 눈이 멀어, '찬핵 후보'를 밀어주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한 셈이다. 역시나 '두통연대'라는 이름답게 아주 '골 때리는'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무리 강조해봐야 결국 쓰잘데기 없는 외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유권자들은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이명박'이라는 껍데기를 깎아내리기에 바빠, 이 밀실논의를 받들어 모시기에 급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일을 처음 목격하는 것은 아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겠'다시피, 비판적 지지의 망령은 87년 대선에서의 '백선본' 드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에 '민노당 찍는 표는 다 사표'라고 주장하신 어떤 분의 이야기도 있었고 말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는 지지하지만 정작 투표장에서는 '될 만 한'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전략적 투표'를 행사하고 있다. 언론에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듯 '두통연대'의 최대 목표가, 인민의 삶을 낫게 하기보다는 '1:1 구도를 만들어 새누리당을 쳐부수는 것'이라는 사실은 선거에서 '전략적 투표'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매 선거마다 '나의 정치적 선택'을 '대세'에 눌려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정치적 자살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일까? 다름아닌 선거제도 때문이다. 그 사람이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를 봐야하는 현재 남한의 1위 다수대표제 아래에서는 그 후보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더 나아가서는 그 당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다. 단 한 표라도 상대보다 적으면 말짱 꽝인 상황인데, 저 사람과 저 사람이 소속된 당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따위가 대체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정치에 대한 불신만 높아간다. 선거의 모든 과정이 후보나 당의 됨됨이나 혹은 정책에 대한 검증을 할 여유를 주지 않고, 그저 진영논리에 의한 '단판 승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판단이다. 우리가 투표를 하는 본질적인 까닭은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함이지, 단순히 정치인들의 승부사적 기질에 놀아나기 위함은 아니지 않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우리가 흔히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고 부르는 혼합의석식 비례대표제(Mixed-Member Proportional system)는 우리가 선거에 참여하는 '본질적인 까닭'을 현재의 1위 다수대표제보다 훨씬 더 많이 충족시켜준다. 정확하게까지는 아니지만 유권자의 의사라고 할 수 있는 정당지지도와 의석점유율을 어느 정도 맞춰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거제도가 현재의 1위 다수대표제에서 혼합의석식 비례대표제로 바뀐다면, 조직표와 돈이 판치는 현재의 정치문화가 정책 중심으로 완전히 바뀔 수 있는 동시에 정치인들의 추접한 사표론에 휘둘려 나의 소중한 정치적 견해를 포기할 이유도 사라진다. 소수의견을 갖는다는 이유만으로 투표할 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거나, 혹은 소수의견을 갖는 사람들에게 '네 의견은 어차피 죽어버릴 의견[死票]이니 그냥 될 사람 밀어주자'는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모습들이란 말인가?

물론 혼합의석식 비례대표제가 모든 정치문제를 해결하는 만능키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정치적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편이라는 평가는 받고 있다. 더욱이 저 이데아 세계에 있을 것만 같은 이상적 제도가 아니라 실제로 독일과 뉴질랜드, 프랑스(프랑스는 약간 수정된 혼합의석식 비례대표제지만) 등 몇몇 현실국가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제도다.

이렇게 현실성도 어느 정도 검증된 최선의 대안이 자꾸만 외면받는 것은, 바로 이 제도를 도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이 훼손될까 두려워 이 제도의 도입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도 개발괴발 하는 참인데, 선거제도 개혁에는 얼마나 소극적이겠는가? 따라서 이제 이 제도의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주체는 우리 밖에 없다. 아쉬울 때는 늘 '민주주의의 주인공'이라 등 떠밀리는 우리, 인민들 말이다. 비록 전광석화처럼 이 제도를 단번에 도입할 수는 없겠지만, 올해를 시점으로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남 눈치보지 않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땅을 만들어 가자. 구태의연한 두 정당 사이에서 갈등하지 말고 진짜로 우리의 삶을 지금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더 많이 발전시킬 수 있는 정치주체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그 땅 말이다.

덧 : 본문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두통연대의 합의문 말미에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정치제도의 개혁'을 하겠다는 구절이 있다. 진통당이 단순히 민통당과 야합하여 정치적 들러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대로 '힘 있는 진보'가 될 수 있을지는 그 구절의 실현 여부에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늘 이 약속이 지켜질 것인지 지켜볼 것이다. 건투를 빈다.



관계자에게 드리는 당부사항 :  오탈자를 제외하고 원고의 내용을 저와 사전의논없이 단 한 자라도 손댄다면, 앞으로는 절대 연재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일반명사와 고유명사는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늘 고생하시는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도 동시에 전합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양당이 무려 ‘정치개혁’을 하겠다며 아깝게 진[惜敗] 사람들에게 의석을 주는 제도(석패율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각자의 정치적 영유권인 영남과 호남에서 자리를 나눠먹는 것만으로 어떻게 ‘지역구도 타파’가 될 수 있다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으며, 동시에 마땅히 정치적 파트너로 삼아야 할 다른 정당들은 배제한 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유리한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움직임이 어떠한 의미에서 ‘정치개혁’이 될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석패율 제도는 정책 선거보다는 인물 중심의 선거 풍토를 강화할 뿐더러, 이와 맞물려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인 금권 선거와 공천권자 중심의 정치 풍토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돈봉투 파문으로 공천권자 중심, 인물 중심의 풍토가 얼마나 구태스러운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또한 석패율 제도는 지역에서 이미 한 번 유권자들에 의해 심판받아 낙선한 후보자를 정당이 억지로 당선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선거 결과가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고, 기득권을 가진 정당의 의사에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면 대체 유권자들은 무슨 낙으로 선거에 참여해야 하는 걸까요? 실제로 석패율 제도를 먼저 도입한 일본 중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선거가 거듭될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두 거대 정당이 ‘정치개혁’의 기치를 들고 선거제도를 손보겠다면, 유권자들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해답은 이미 있습니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도입과 비례대표 의석수의 확대가 그것입니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현존하는 선거제도 중 유권자의 의사를 가장 잘 반영하는 제도입니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하에서 치러지는 선거에서는 무수히 발생하는 사표로 인해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는 유권자의 수가 현재보다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승자 독식의 독선적 구조가 판치는 현행 다수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들보다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들의 평균 투표율이 높다는 사실은 이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들에서 여성, 장애인, 성적 소수자, 소수 인종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원내 진입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어떻습니까,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이쯤이면 국내 도입이 시급하지 않겠습니까?


새해 인사

2011. 12. 31. 23:30

아듀 2011! 미리 새해인사 올립니다. 한 학기 동안 즐거웠어요.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한상욱 드림.SONY | SLT-A55V | Normal program | Pattern | 1/40sec | F/4.0 | 0.00 EV | 18.0mm | ISO-100 | Off Compulsory | 2011:12:09 00:00:58


요샛날 글이라는걸 쓰다보면 말이다. 점차 유리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유독 내 글에는 그렇다. 별로 인간적 향취가 나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관심없는 이야기만 하고 있어 그런건지 사람들이 통 반응이 없다. 덧글도 없고, 좋아요도 없고... 뭐 그렇다.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말은 누군가에게 들리기 위해 존재한다. 아무리 지조 있는 연사나 글쟁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도 듣지도, 읽지도 않으면 어느 순간 말이나 글 모두 하고 싶어하지 않게 된다. 나도 지금 그렇다.

논쟁적 글쓰기를 해도 그랬고, 뭐 나름 '트렌디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그냥 별로 나는 공감능력 없는 글쟁이인 모양이다. 쓸모없는 글을 쓰는건 더 이상 의미도 없고, 그렇잖아도 볼품없는 정보들이 넘쳐흐르는 거대한 월드와이드웹이란 쓰레기장에 쓰레기 하나 더 던져 넣는 일이니 그냥 모두 때려칠까 싶다.

솔직히 말해 요새 학교생활도 영 신통치 않다. 다들 오른쪽을 보는데, 나만 왼쪽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 나는 관심받고 싶다. 관심없으면 살아가기가 버거운 사람이야. 그래도 일상 공간에서 대놓고 일탈활동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이렇게 조용히 침잠해야겠다.

흑흑, 열심히 살자. 언젠가는 나에게도 볕들날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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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onghyun.tistory.com 공현 2011.12.23 11:46

    밥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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