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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의 문제가 아니라 너의 문제

클라시커 2010. 12. 25. 02:35

  김준성이 최근 "진보신당의 진로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이란 글을 썼다. (트래픽 올려주기 싫어서 일부러 링크는 안 건다. 구글에 제목만 넣어봐도 나올텐데?) 별로 읽고 싶지 않은 사람의 글인데, 어쩌다보니 자꾸 찾아서 읽게된다. 좀 매력있는듯?

  근데 뭐 이 포스트가 그 글에 대한 반박을 하고자 하는 글도 아니고... 애초에 내가 그럴만한 깜도 안되는지라 그냥 좀 인신공격성 발언 몇 자만 남기고 간단하게 정리할까 한다. (솔직히 말도 안되는 이야기니까, 실컷 이거 읽느라 시간보내고 나서 씩씩대며 욕할거면 그냥 안 읽고 욕해도 된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 말도 안되는데, 이까짓게 좀 말이 안되면 어때서?)





  그의 글에는 나름의 고민이 있다. 그가 지적했듯, 한국에서 진보정당 운동 한다는 사람들 중에 현실인식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다. 사실 그게 정상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대중에게 어느 정도 지분을 획득하려는 사람들은 벌써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으로 갔다. 톡까놓고 말해보자. 민중당 건설의 주역이었던 이재오와 김문수가 여지껏 이 동네에 있었다면 오늘날 특임장관이나 경기도지사를 해 먹을 수 있었을까? 노무현이 계속 인권변호사 노릇이나 했다면 대통령을 할 수 있었을까? 우상호니, 송영길이니 하는 386 나부랭이들이 지금까지 위장취업하고 야학 열었다면 국회의원 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최근에도 몇 사례 있지 않던가? 2천년대 초, 민노당 르네상스 시절 열심히 심상정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오건호는 최근들어는 진보정당 쳐다도 안 본다. 윤종훈은 민노당에서 크게 데이더니, 짬뽕집 연다고 잠깐 언론 타다가 어느새 정동영 옆에 서 있다. 임종인은 어떠한가? 작년 10월 재보선 때, 진보3당이란게 으쌰으쌰 나서준데다 민주당에서 내세운 후보란 것도 영 좋지 않아 여러모로 임종인에게 불리하지만은 않은 전세였는데, 뚜껑까보니 민주당의 그 '영 좋지 않은 후보'가 가뿐히 승리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 이후에 '럭키세븐공화국'이란 해괴한 소리만 해대다가, 결국엔 엊그제 민주당에 입당했더라.

  소결인즉슨, 현실은 인식하는 순간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단 거다. 돈도 안돼, 명예도 없어, 그러면서 고생만 쌔가 빠지게 하는게 뻔한게 이 바닥의 '현실'인데 뭣하러 여기에 있나? 아, 물론 여기에 있을 이유가 딱 하나 있다. 그건 이 바닥에 있는 다수의 깜이 한나라/민주같은 메이저리그에서 받아들여지기에는 한참 함량미달이라는 사실. 난 이런 '현실'부터 직시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한편으로는 있다.


  한국에는 힘이 있는 별다른 사민주의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에 자유주의 세력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저딴 해괴한 소리는 대체 어디서 나온건가 싶다. 물론 저 말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그리고 단기적 전략 수준에서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최소한 1g은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글을 쓴건 '당의 방향'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지, '당신의 방향'이나 혹은 당신이 속한 '써클의 방향'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잖는가? 저 말이 성립하려면, 애초에 진보신당이 '사민주의적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정당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주장의 전제인 '별다른 사민주의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에'란 말이 100% 성립할 수 있겠지. 근데 여긴 아니잖는가? 그 수가 비록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긴 하지만, 엄연히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일군의 그룹이 엄연히 당내에 존재한다. 그럼, '한국 사회를 사회민주주의 정치세력이 주도할 수' 있도록 이들은 과감히 포기하겠다는 이야긴가? 차라리 이 이야기라면 좋을텐데, 내 보기론 그 깜냥에 저런 말 절대 못한다. 내 10원을 걸지.



그리고 언뜻 보면,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다. 인용을 보자.

2) 대중정당

우리가 만들 새로운 당은 대중정당이어야 한다. 소수 당료나 엘리트, 활동가의 당이어서는 안 된다.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국민의 의사에 입각해 운영되며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활동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특정 이념이나 주의, 몇몇 이론가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한 정당이어서는 안 된다.

- 김준성의 글 중에서, 굵은 글자와 밑줄은 내가 추가

  내가 너무 이 사람을 진지하게 보고 있는 거든지, 아니면 내가 트집잡기 위해서인지 둘 중 하나일텐데 (내 개인적으로는 후자라 생각.) 김준성은 이 대목을 쓰면서 아마 자기 글에서 '사회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란 뉘앙스에서 차용된) '복지'란 단어가 최소 10번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한 모양이다. 사회민주주의는 특정 이념이나 주의가 아닌 모양이지? 아마도 저 부분은 앞서 언급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일군의 그룹'이 진보신당의 주요 거점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쓴 부분이라 사료된다. 그니까, 다른 독자들께서는 그냥 이건 정파다툼에서 자기들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그럴듯한 논리니 그냥 상큼하게 개무시해주시면 된다는 말 되겠다.




  솔직히 말해, 진보대연합당이 출범하면 사회주의보다는 사회민주주의가 더 득세하기 쉬울테다. 그리고 나름 사회복지연대라는, 껍데기는 꽤 그럴싸한 써클의 짱 노릇을 해먹은 본인의 정치적 입지도 지금보단 높아지겠지. 하지만 사회민주주의를 갖다가 쓴다고 다 사회민주주의자가 되는 것도, 국가가 사회민주주의국가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건 아마 본인이 더 잘 알테다. 보편복지의 실현을 위해서는 증세가 필수다. 근데 이게 참 좋은건데 직접 말할 수는 없다. 단적인 예로, 앞에서 등장한 윤종훈이 '민주노동당 즐!'을 외친 결정적인 일화가 있다. 윤종훈은 아시다시피 회계사이고, 조세전문가로서 민주노동당에 참여했는데 이때 그가 '투명한 조세체제를 만들기 위해 현행 간이과세제를 폐지하자!'라 주장했었다.[각주:1] 열라 신선한 이야기였지만,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두려워한 당시 민노당 지도부는 "조... 좋은 이야기지만, 표 떨어진다능!"이란 아주 명쾌한 논리로 윤종훈의 의견을 가볍게 쌩까게 된다. 이거에 열받은 윤종훈이 "너님들 GG"치고 나온거고.[각주:2]

  그렇다고 민주당이 증세 이야기를 할 수 있냐면, 그럴 리가. 얘네가 요새 '감세, 감세' 찾으니까 무슨 갑자기 '온 국민 증세시대'가 온 것 같지만, 그 앞에는 "부자"란 옵션이 달려 있단 말씀. 그러니까 '부자감세는 안 되지만, 서민증세는 글쎄. 아, 그 얘긴 하면 표 떨어진다니깐!'이 얘네의 기본 포지션이라 볼 수 있겠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한국사회의 지금 현실에서 '보편적 복지를 위한 보편적 증세'를 말할 수 있는 용기있는 정치세력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앞선 사례에서 보듯 현실에 예민한 정치세력일수록 그 발언에 함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그냥 그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합치고 보면 된다? 남더러 현실인식이 부재하다고 혀를 끌끌찰 생각에 제 눈의 들보들이나 직시할 지어다. 그렇게 모자라니까 여지껏 이 동네를 못 벗어나고 있지. 안 그래?
  1. 간이과세자는 일반과세자와 달리 자신의 매출에 대해 세금계산서를 발부할 수가 없고, 대신 영수증만 발행할 수 있다. 근데 이 영수증이란게 이현령비현령인지라, 매출누락이 손쉽다는 말씀. 거기에 이 간이과세자와 거래하는 일반과세자가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지 못함에 따라 누락되는 매출이 꽤 된다. 일반과세자들이 세금계산서를 발급받는 이유는 세금신고 과정에서 사업영위에 들인 물품구매액에 해당하는 부가세는 국가가 환급해주기 때문이고, 여기서 세금계산서가 그 증빙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근데 뭐 귀찮게 그럴 필요 있나? 간이과세자랑 거래할때 세금계산서 안 받는 대신 10% 할인받는게 이 나라 상도 아니던가. 여튼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다음 링크를 참고하라.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7672.html [본문으로]
  2. 아 뭐, 지금와서보면 어지간한 자영업자들은 다 한나라당 지지하거나, 아니면 민주당 또는 국참당 지지하더만... 이럴 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만 마신다'란 말을 쓰는건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