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記/2015

익숙한 것에 대하여

클라시커 2015. 5. 31. 22:33

어느 순간부터 블로그를 그만뒀다. 가장 최근 작성일을 보니 2013년 8월. 지금으로부터 대략 1년도 더 된 날짜다. 그만두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여러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여자친구와도 관계가 좋지 않았고, 더불어 취업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이것저것 하기 시작한 때기도 했다. 더 크게는, 이제는 그 누구도 긴 글을 찾아 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 같다. 페이스북 같이 기민하나 더 큰 파급력을 가진 매체가 있었고, 이어 글보다 사진이 더 눈에 들어오는 인스타그램 같은 매체가 인기를 끌었다. 아니, 사실 드문드문 올라오는 그런 사회관계망서비스까지 애초에 갈 일도 없었다. 적은 데이터사용료만 내면 실시간으로 근황을 물어볼 수 있는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가 있는데, 대체 왜. 여튼 이런 상황에서 그 누구도 긴 글을 더 이상 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이유도 있었다. 정치색이 짙은 글들을 써 왔고, 취직을 앞둔 입장에서 이 글들이 누군가에게 찾아 읽혀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란 것들은 대체로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수용하기에 꽤 고까운 내용들이었다. 가끔은 이 자본가들을 다 몰아내고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한때는 그렇게 가기 위한 여정을 설계하는 일들도 했었다. 그 누구도 내게 공식적인 직함을 주지 않았고, 그렇기에 내 설계들이 반영되는 일은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 때가 더 좋았다. 최소한 지금처럼 스스로에 대한 연민에 빠져 드리워진 그늘을 바라보며 신세한탄을 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갖지 못할 것들과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며 왜 난 저것들을 갖지 못하는지에 대해 괴로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은 기억보정일 것이다. 아마도 2년쯤 더 지나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을 떠올리면, 그 미래보다 지금이 더 아름다웠노라며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바라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미없는 일이 된다. 왜 이 블로그의 이름이 ‘한 발을 내딛다’가 되었던가. 그것은 머물러 있는 그 자리에서 계속 성큼성큼 걸어나가자는 어떠한 생각에서 그렇게 정한 것이 아니었던가.


다시 블로그로 돌아온 것은, 이런 생각들 때문이다. 다시 스스로를 챙겨 올리고, 말하지 못해 썩어 문드러진 마음을 다스리고, 웅얼거림을 정명하게 만들어보기 위해. 누군가들이 누누히 말하듯 글쓰기는 수양이며, 그렇기에 표현력이 부족한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년 전과 달라져야 할 부분은 독자의 유무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다. 내 스스로 더 이상 글을 써서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될 때에야 다시 블로그를 떠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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