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記/2016, 쓰촨-동티베트

[prologue] 그렇게 다시 중국으로 갔다

클라시커 2016. 9. 11. 16:28

첫 직장에서 맞는 첫 리프레시 휴가 - 회사는 여름에 편중되어 사용되는 '여름휴가'를 없애고 대신 '리프레시 휴가'로 이름을 바꾸어 연중 어느때나 사용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 를 결정한 것은 7월이었다. 나는 당시 도무지 생각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 회사를 떠나기 일보직전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괴로운 일상을 대차하고자 다짜고짜 응했던 소개팅에서도 차여 몹시 죽고 싶은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쓰고보니 전후관계가 다소 비틀어졌지만) 보다 못한 '누군가'가 내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 '리프레시'를 위해서. 그 누군가는 좋은 데 가서 쉬는 것도 좋지만, 한 살이라도 더 늙기 전에 '고생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도 동의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스스로를 더 저 나락의 끝으로 내동이쳐 버리는 특유의 변태적인 감성 덕분이었던 것 같다. 어디 한 번 당해보라는 심산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그것에서 살아남으면 상처를 안고 계속 살아가라는 식으로.


처음에 쓰촨[四川]성 지우짜이거우[九寨沟]에서 시작되었던 여행지는 이내 마오타이 주(酒)의 고향인 꿰이저우[貴州]로 옮아갔다가 다시 '동티베트'으로 일컬어지는 쓰촨 성 서부[각주:1]로 고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지인 둘이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를 무척 신뢰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내 여정의 일부에 들어오는 것에 큰 의심을 하거나 거절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신뢰하는 둘이라면 나 역시 그들을 신뢰하고 좋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이후에 계속 이야기 할 것이다.


휴가 결재를 받고 어디 가느냐고 묻는 팀장에게 '중국 산악 지방에 고생하러 간다'고 말했고, 팀원들은 대체 왜 리프레시를 고생하러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젊으니 사서 고생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한국사회에 최적화된 바른 정답을 말했고 그 누구도 그것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 여행의 시작이 이런 어두운 심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물론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다시 중국으로 갔다.



  1. 티베트의 상징인 라싸가 위치한 시짱 자치구 외에도 인근의 칭하이 성, 쓰촨 성 등지에도 티베트인('짱족')의 자치주들이 위치하고 있다. 실제 토번제국이 강성했던 시절에는 당을 무척이나 괴롭혔고, 이때에 현재 칭하이 성과 쓰촨 성 일부를 국경으로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강제복속 과정에서 기존 티베트 지역의 서부는 시짱 자치구로 갈리고, 동부는 각각 칭하이 성과 쓰촨 성으로 편입되었으므로 이 쪽을 '동티베트'라 칭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