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9월 2일, ICN-CTU

2016. 9. 11. 20:33

9월 2일 금요일.


이 날은 거의 하루종일 서비스 관련 보도자료를 작성했다. 회사에 대언론 창구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이걸 내가 왜 쓰고 있어야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뭐 그랬다.


글을 쓰는 건 일이어도 즐겁다. 현상이 나의 언어로 번역되어 타인의 논리구조에 들어가고, 타인이 제대로 이해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다. 여행과는 큰 관계가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진작에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해외영업이니 경영이니 하는 것들에 억지로 관심을 가지며 스스로를 속여왔던 날들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저녁 8시 출발 비행기라, 오후 5시 45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인천공항행 직통열차를 타야 했다. 팀장께 양해를 구하고 30분 일찍 회사를 나섰다. 이미 아침에 회사에 오면서 50리터짜리 가방에다 등산화를 신고 간터라 팀장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하셨을거다. 반차를 써도 됐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이것도 내 복이다.


아슬아슬하게 기차를 타고 공항에 가는데 거래처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분명히 9월 첫 주에 휴가가 잡혀 있으니, 급한 건이 있으면 미리 좀 달라고 그렇게 부탁하며 신신당부했건만 이런 식이다. 차주까지 물건을 받아야 하는데 문제가 없겠냐고 묻는다. 노력은 해보겠으나 장담할 수 없다고 했어야 했지만, 또 멍청하게 '문제없도록 하겠다'고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 일을 물려주고 떠난 선임자는 내게, '해달라는 대로 다 해 주지 마세요. 착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라 당부했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본인부터 그렇게 모질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바보같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랬기에 그녀가 참 좋았다. 9개월 정도, 아니 파트를 옮긴 이후니 대략 6개월 정도 밖에 시간을 공유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떠날 때에 매우 아쉬워 했던건 모두 다 그녀의 품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공항에 들어와 라운지로 향했다. 인터넷도 대략 되지 않는 오지로 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휴대폰과 간단히 웹 서핑을 하기 위한 LTE라우터 외에는 네트워킹이 가능한 장비를 일체 지참하지 않았다. 짐도 줄여야 했고. 다행히도(?) 회사 업무망은 어디서든 동일한 환경을 제공하도록 가상머신에서 구동되고 있었기에, 라운지 내 컴퓨터에 앉아 간단히 거래처의 급한 부탁을 처리했다. 시간이 없어 미처 다 하지 못한 일은 다른 팀의 선배에게 부탁했다. 사실 응당 부재시에 업무를 처리할 대행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회사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어서 백업할 사람이 없다. 이건 한 번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탑승시간이 임박하자 여행을 함께 가자고 한 '누군가'에게 어딘지 묻는 전화가 계속 왔다. 라운지에서 일하고 있고, 곧 가겠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바쁜 사람이다. 나와 함께 같은 회사에서 인턴을 했지만, 둘 다 전환이 되지 못했었다. 다행히 그는 다른 회사에 잠깐 다녔다가 결국에는 인턴을 했던 회사에 입사를 했다. 누군가는 그를 부러워 하는 내게 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매일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한다고 했다. 이번 여행이 무계획에 가깝게 진행된 것도 그의 부재가 컸다. 원래 시작부터 그렇게 하자 - 빡빡하게 계획에 매달리지 말자 - 고 합의하긴 했지만, 내심 그도 나도 두려웠는지 막판에 뭔가를 찾아서 막 던져 놓긴 했었다. 사실 상대적으로나 - 절대적으로나 - 그에 비해 여유가 많았던 내가 그를 도왔어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짜증 한 번 내지 않은 그에게 고맙다. 집에 돌아와 이렇게 여유있게 여행을 회상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공헌이 지대하다. (이런 매우 뻔뻔하게 보이지만 말이다.)


15분 전에 게이트에 갔다. '누군가'와 그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친구를 'K'라고 부를 생각이다. 누군가도 'L'이라 지칭하자.


K의 첫인상은... 글쎄. 그는 까무잡잡하고 자그마한 친구였다. 기억나는건 눈이 선했다. 말씨도 나긋나긋했다. 그리고 열흘의 여행을 마친 후에 나는 K의 팬이 되었다. 그는 여행기간 내내 단 한 번도 찡그린 적이 없다. 여행기간 중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그는 그 상황을 좋게 이해하려고 했다. 어떤 사안이 던져졌을 때 먼저 위기로 판단하고 분석부터 하는 나와는 달리 그는 그야말로 '이 역시 지나가리라'며 유연하게 넘는 친구였다. 여행 끝까지 얼굴 붉힐 일이 없을 수 있었던 것은 K의 덕이 컸다.


비행기가 떴다. 지루한 3시간 여가 흘렀다. L과 K 외에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한 L의 또다른 친구는 직항편이 아닌 베이징 경유편으로 청두[成都]에 온다고 했다. 원래 J - 이제 그를 J라고 부르자 - 의 비행기는 우리보다 일찍 도착해야 했지만, 중국의 공항이 언제나 그렇듯 연착 때문에 우리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불안했는지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자신이 도착했다는 한 마디를 보내기 위해 하루치의 데이터 무제한 로밍을 신청했다고 했다. 중국 국적기가 발착하는 제2터미널 게이트에 갔는데 까만 치마를 입고 손에 롯데면세점 봉투를 든 자그마한 아가씨가 사뭇 초조하게 서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저 사람이 아니냐고 L에게 물으려는 찰나, 그 아가씨가 외마디 비명을 터뜨렸다. 그가 J였다.


J의 첫인상은, 솔직히 말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 순간의 기억이 모두 날아가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유독 이성에 대해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하는 내 자질의 부족함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그는 어른스러웠다. 그리고 열흘 동안 나는 그 어른스러움의 은혜를 많이 입었다. J에 대해서는 첫인상을 논하는 것보다 열흘 동안 내가 그를 보며 느꼈던 것들을 쓰는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L과 K, J 모두 배울게 많았다. 공자께서 이르시듯 삼인행이면 필유아사다. [子曰三人行必有我師焉] 삼인 중 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부터 배우라는 뜻이지만, 이 셋은 모두 선한 스승이었다. 아무 목적도 없이 떠난 여행에서 행복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 한편으로는 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서 되돌아 볼 수 있었던 것은 - 이 셋의 덕이 컸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호텔에 들어가 새우잠을 청했다. 이제 정말 내일부터 긴 여정이 시작될 것이었다. 청두의 고도는 487미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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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1 - [prologue] 그렇게 다시 중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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