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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파업] 파업을 보는 여러분에게

클라시커 2008. 12. 27. 01:05

  여러분들이 이토록 파업에 관심을 가져주다니, 우선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은 언젠가부터 '노조'와 '파업'을 악의 축으로 생각해왔었지요. 어떤 사람도 그 파업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 파업의 목적인지 알지 못한채 그저 주류 언론의 소설에 휘말려 파업을 비난하기에 바빴지요.

  혹자는 이렇게도 말합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파업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미안하지만, 그것은 파업의 의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파업이 갖는 힘은 '불편함'에서 옵니다.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하고, 운수노조가 파업을 하고, 전교조가 파업을 하는 건 자신들의 직업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을 이용하는 매우 영리한 '반항방법'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불편을 초래'함으로서,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봐주기를 원하고 있는 거지요.

  또다른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볼모로 당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고' 그런데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파업들은 몇몇의 파업 사례들을 빼고는 모두 공익을 위한 파업들이었습니다. 지하철노조의 파업은 지하철공사 측의 일방적인 인원감축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고, 전교조의 파업은 자꾸만 경쟁과 수월성만을 강조하는 시장만능주의(신자유주의)적 교육흐름에 대해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일반적으로 지하철 운행에는 두 명의 기관사께서 탑승해야 하는데, 그 이유를 아시는지. 경쟁주의와 수월성만을 강조하는 시장만능주의적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만들지를 아시는지요? 만약 여러분이 그 이유를 모르시면서 무조건 파업에 일갈을 퍼부으셨다면 지나치게 이기적인이신 겁니다.

  쉽게쉽게 가게 유명한 연설문 하나를 소개할게요. 마르틴 니묄러의 '다음은 우리다'란 연설문입니다.

다음은 우리다
/마르틴 니묄러(독일의 신학자)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왜 '연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이 연설문은 꽤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가 공산당원이 아니고, 유대인이 아니고, 노동조합원이 아니고, 가톨릭교도가 아니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88만원 세대'에 속해 살 것이라 사회에서 떠들지만, 적어도 나는 (또는 내 아이는) 일류대에 가서 일류 직업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에 침묵해도 된다. 모두가 사교육비가 지나치게 높아 문제고, 우리의 교육제도가 비정상적이라 말해도 적어도 나는 (또는 내 아이는) 뒤쳐질 수 없기에 사교육을 받아도 된다. 라 생각하는 여러분의 그



말입니다.


  시장만능주의는 필시 여러분을 두 가지 부류로 편입시키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다른 선택은 없고 20이냐, 80이냐의 문제만 있을 뿐이지요. 네, 물론 여러분은 20에 속하고 싶으실 겁니다. 저도 그렇구요. 그러나 그것이 과연 현실이 될까요? 우리 모두가 80을 외면할 수 있을까요? 아니겠죠. 애초에 우리 모두가 20에 속할 수 있다면 왜 자본주의가 비정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파업은 80의 다수를 20, 또는 그 근처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하나의 사회적 연대 투쟁입니다. 아, 운동권 단어 나와서 움찔 하셨나요? 투쟁? 뭐가 어때서 그러십니까?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도 지난 6월, 그 뜨거운 광장에 나와 '저항'을 부르짖지 않으셨습니까? 왜 나오셨습니까? 내 생명이 위험할까봐? 내 아이의 생명이 위험할까봐? 내 자손들의 미래가 어두울까봐? 네, 모두 맞습니다. 우리가 정치집단도 아니고 굳이 '민족의 미래' 또는 '계급의 이익'과 같은 거창한 거대담론을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그들도 그런건 이루지 못해요.

  가장 위대한 혁명은 가장 기본적인 '바람'에서 기인합니다. 프랑스 인민들이 왕조를 타도하고 공화정을 세울때, 그 어떤 사람도 처음부터 '공화정이 민주적이야'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자꾸만 피폐하게 만드는 구제도의 모순에 대해 이론적으로 빠삭하게는 아니지만 실체적으로 알고 있었고, 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그걸 바꾸고 싶어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행동하십시오.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전교조 선생님들이 파업을 하면, 애들을 볼모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한다 생각하지 마시고 왜 그 파업을 하는지부터 이해해보세요. 만약 그 파업이 납득할 만하다면, 아이들에게 '왜 너희 선생님이 수업을 하지 않으시는지', '왜 너희가 그 파업을 지지해야 하는지'를 설명해보세요. 서울의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해서 열차가 오지 않는 것을 짜증내기 이전에,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우선 들어보세요. 그리고 그 파업이 납득할 만하다면, 노조원들을 비난하기보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세요. 그들의 근무환경 개선이 여러분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이유가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