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記 164

글이 짧아 죄송합니다

근래 그냥 눈에 띄는 글 몇 개를 받아 읽다 꽤 재밌는 블로그를 하나 찾았는데, 그곳이 '하민혁의 민주통신'이란 곳이다. (주소야 뭐, 원체 유명하신 분이니 포털사이트에서 까딱까딱 몇 번만 하면 나올 거라 짐작되어 굳이 링크 걸긴 싫다.) 글을 꽤 시원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씀 다 하시면서도, 그렇다고 논점에서 벗어나는 일 없이 차분히 끌어나가는 모양새를 보노라면 글 쓰는 데에 도가 텄다는 게 아마도 저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근데 글쓰는 솜씨도 일품이지만, 그 양반이 다루는 컨텐츠도 이건 뭐 거의 '썬데이 서울' 수준이다. 질이 낮다는게 아니라, 나쁘게 말해 선정적인 주제를 찾아 잘 다루는 것 같더라. 뭐, 또다른 유명 블로그인 민노씨가 평하듯 '위악'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는 하는데, 어쨌든..

4월 14일, 봉평 허브나라-이효석 생가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 며칠 전, 한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오른 '상수 허브랜드' 포스팅을 보고 봄나들이가 가고 싶어졌다. 마침 화요일이 생일이고 해서, 바람도 쐬고 또 이번에 새로 산 네비게이션의 성능도 시험해볼겸 엄마를 졸라 나들이길을 나섰다. 여기저기에 물어보니 허브랜드보다는 봉평이 낫다는 이야기를 듣고, 목적지를 그곳으로 전했다. 결정과정에 허브나라가 '국내 최초'라는 데서 오는 아우라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

어느 '주머니병' 환자의 고백(?)

알바를 하다 짬이 좀 나서 마우스를 들고 덜컥거리다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김진 변호사가 한겨레21에 연재하던 '노 땡큐!'란 꼭지의 '주머니병'이란 기사였다. 클릭을 하고난 후 처음으로 든 생각은 '당혹감'과 '부끄러움'이었다. 당혹감이 든 것은 내가 평소에 하고 있는 짓거리를 너무 명확하게 설명해주었기 때문이었고, 부끄러움은 그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블로그 하나를 꿰차고 그저 '시발시발'거리고 있는 인생이지만, 나도 한 명의 소시민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종종 당황스러워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몇몇 사람들이 나를 꽤 "막나가는 '활동가'"로 알고 있을 때다. 물론 한 달여 광장에서 숙식을 해결했던 기억도 있지만, 나는 언제나 전선에서 가장 멀고 안전한 곳에 있었다. 막나가는 삶을 사..

정신 나간 시대와의 대면

시절이 수상하다. 비단 이명박 씨와 그 졸개들 때문만은 아니다. 시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과의 이질감 때문이랄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질감이라기보다는 '혐오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역겨움', 그것이 내가 나를 포함한 요즘 사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씁쓸함 중 하나다. 소위 진보 진영, 더 구체적으로 말해 좌파 진영에서는 오랫동안 가진 금기가 있어 보인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민중과 함께 가야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가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NL, PD 따위의 논리들도 결론적으론 이론가들의 말싸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바탕에는 '민중'이란 허황된 구심체가 있었다. 한국 사회의 좌파가 실천보다는 주의에 경도된 환경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그때로부터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지금도 여전히..

요새 근황

블로깅이 뜸했다. 지인으로부터 별안간 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요 며칠 간 밤낮없이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 생각없이 다니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능력도 좋다고 부러워했다. 경제사정이 어려워 알바를 구하는 수요가 줄고 있기 때문이란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으면 가장 힘없는 계층부터 그 여파에 밀려난다더니, 그 말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상황은 상황이고, 요새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강호순과 민노총, 그리고 김연아다. 앞의 두 대상들이야 누구에게나 짜증을 유발하는 것들이지만 김연아는 왜 그런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이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김연아가 삼성과 광고계약을 맺은게 싫었다.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교복광고'를 찍..

그 많던 간첩들은 어디로 갔나?

요 며칠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기가 차다. 때 아닌 땅굴 소동에 '대남 전면 대결태세'는 대체 또 뭐야. 게다가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는 '남북전쟁', - 그걸 백번 쳐봐라, 그래봤자 The Civil War 이상 나오나 - '북한땅굴'과 같은 요상스러운 것들이 줄줄 올라온다. 급격히 '국민'의 안보논리가 강조되는 이 시점에서 국내 최고 사정기관 수장 둘이 그만두고, 한 사람은 그만둘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자리는 이전보다 더 이명박 씨와 가까운 사람들로 채워졌고, 또 채워질 전망이라 한다. 상식적으로 사람을 경질하더라도 그러한 인사이동은 평시에나 일어나야 맞다. 경질될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재직했던 기간동안에 그 조직은 그를 필두로 움직였기에, 급박한 활용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그를..

몇 가지 끄적끄적

미네르바의 구속 사태 이후로 많은 누리꾼들이 국외에 위치한 서버로 망명을 떠나는 모양입니다. 뭐, 전 아직 실제로 그런 분들을 접하진 않았습니다만 각 언론사에서 현재 상태가 저렇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고 있더군요. 이명박 씨의 수준상 충분히 제2, 제3의 미네르바가 나올 개연성 역시 높고요. 다행히도 제 글은 '선동'하기엔 99%나 부족한 점이 많아 망명할 걱정은 덜게 되었습니다. 설령 제 글 중 일부가 잘못되어 잡아간다하면 잡아가라 하지요, 뭐. 어차피 앞으로 2년 동안은 행안부 소속으로 국방의 의무를 질 것이기에 도주의 우려도 없고 워낙 천성이 게을러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으니, 영장이 나오면 우스운 일이겠고요. 서슬이 시퍼렇던 어느 해에는, 공안기간에 끌려가 취조를 받는 것이 훈장이라도 되는 듯 자랑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시세밑이 되면 으레 나오는 말 중 하나가 '송구영신'입니다만,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임기제인지라 함부로 내다버릴 수가 없더군요. 원체 비겁자라 어제 보신각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는 못나가고 KBS랑 칼라TV만 켜놓고 지켜보고 있는데, 역시나 기분만 엄청 상하고 말았습니다. 보신각 종이 서른 세 번 타종되는 순간에, KBS에서는 '희망의 나라로'란 독일 가곡을 불러주더군요. 노래 가사를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희망의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자유, 평등, 평화, 행복'이 '가득'해야 하는데 과연 내년에 저 전제조건들이 충족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우울한 한 해가 되겠습니다만, 죽지는 마세요. 신께서는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고통만 인간에게 주신답디다. 그말인 즉슨, 언젠가는 우리도 MB를 쓰러뜨..

[블로그파업] 파업을 보는 여러분에게

여러분들이 이토록 파업에 관심을 가져주다니, 우선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은 언젠가부터 '노조'와 '파업'을 악의 축으로 생각해왔었지요. 어떤 사람도 그 파업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 파업의 목적인지 알지 못한채 그저 주류 언론의 소설에 휘말려 파업을 비난하기에 바빴지요. 혹자는 이렇게도 말합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파업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미안하지만, 그것은 파업의 의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파업이 갖는 힘은 '불편함'에서 옵니다.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하고, 운수노조가 파업을 하고, 전교조가 파업을 하는 건 자신들의 직업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을 이용하는 매우 영리한 '반항방법'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불편을 초래'함으로서,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봐주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