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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아트센터 - 용인, 정말로 '세계최고 선진용인'에 한 발짝 다가서다

백남준 아트센터가 문을 열었다. 백남준의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란 평 덕택에 완공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듬뿍 받았던 프로젝트가 드디어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아트센터를 짓겠다는 경기도청 측의 제안에 백남준은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신의 작품 2000여점을 선뜻 내놓았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 이 기증은 백남준의 사후, 백남준의 유산 관리인이었던 장조카와 경기도청 간의 법적분쟁을 불러왔지만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백남준 아트센터에 대한 세간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아트센터가 위치한 용인은 백남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이와 같은 국보급 시설이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아트센터의 옆에 위치한 경기도박물관 때문이다. 인구 수로나 크기로나 국내 최고인 경기도청으..

눈으로 기억되는 그녀

눈이 깊은 여인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 그녀는 아름다우면서도 요새 여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윽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다. 그래서인지 한편으로는 까다롭다. 너무나도 까다로워 가끔은 그 성미를 맞춰주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사랑스럽다. 간혹 나에게 보여주는 환한 미소와 그 깊은 눈으로 그윽하게 보내는 눈길은 나를 그녀에게서 더욱 헤어나올 수 없게 한다. 나의 매일은 오로지 그녀만을 위한 시간이 되었다. 집을 나서다가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하다못해 공부를 하다가도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면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떠오른다. 그녀를 다시 만나보기를 늘 희망한다. 그녀가 나에게 주었던 것들을 잊지 못해서다. 그녀는 내 삶에 '색'이란 걸 도입했다. 모노톤의 단조로운 삶을 총천연색으로 치장해주었다. 굳게 ..

슬픔 속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

안타까운 또 한 명의 영혼이 세상을 등졌다. 이십 여 년을 우리 곁에 있었던 사람인지라, 떠나는 순간도 절친한 벗을 잃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언제나 연예인들과 최후를 함께했던 사신(死神), '악성 루머'가 또 등장했다. 악성 루머에 희생된 영혼은 오늘의 그녀가 처음은 아니었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들도 그랬다. 우리는 연예인들이 돈을 먹고 자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연예인들은 팬들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결국엔 그것이 순환하여 자본을 벌어들이는 기제로 작용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에게 팬들의 열정이 큰 힘이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연예인들로서는 인기를 얻어야겠다는 그들의 욕망 뒤에 자리잡은 비난에 대한 중압감이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내가 ..

과연 나 역시 덤덤할 수 있을까 - 성 정체성에 대해

요새 네이버 웹툰에서 와난 씨의 '어서오세요, 305호에!'를 꽤 열심히 보고 있다. 이성애자들이 갖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을 꽤나 잘 뒤집어놓는 만화인데, 보면 볼수록 어쩜 이렇게 차분하게 말을 풀어놓는지에 감탄하고 터부시 되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친근감있게 풀어놓는 작가의 용기와 능력에 또 감탄한다. 이번주 미녀들의 수다에는 왕비호가 나왔는데, 브로닌이 '게이 같습니다~'를 연발해서 꽤 웃었던 기억이 있다. 짧은 핫팬츠와 딱붙는 하트표 면티셔츠, 눈가에 짙게 그은 아이라인이 브로닌이 알고 있는 동성애자의 이미지에 부합했던 모양이다. 웃고 즐기는 분위기로 흘러가자 브로닌은 또 이렇게 말했다. '나 게이 친구 많습니다~' 시쳇말로 무척 쿨했다. NBC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로앤오더 : 성범죄 전담반'의..

'글쓰기의 기초와 실제' 과제 중

성균관대학교가 자랑하는 수업 중에 '글쓰기의 기초와 실제'라는 과목이 있다. 말 그대로 글쓰기의 기초와 글을 실제로 써 보는 연습을 하는 수업이다. 과제가 하나 나왔는데, 아래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1200자 내외의 글을 쓰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나는 이런 글을 썼다. 태초에 말씀이 있으셨다. 그 말씀은 빛과 어둠을 가르시고, 이어 닷새 동안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드셨다. 첫 사람이 등장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창세를 시작한지 엿새째에, 말씀은 점토로 자신의 모습과 꼭 닮은 형상을 빚어 숨을 불어넣었다. 흙이 눈을 뜨자, 말씀은 그것을 가리켜 사람이라 부르시고는 선과 악을 구별 지을 수 있는 지혜를 얻지 말라 사람에게 신신당부하시었다. 그러나 사람은 그 말씀을 배신했다. 분노한 말씀은 사람..

아고라의 쇠락, 민주주의 2.0의 개막 - 촛불의 행방은?

9월 18일 정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들여 준비했던 '민주주의 2.0'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이 '노공이산'이란 필명으로 올린 환영사 겸 감사인사에서도 읽을 수 있듯, '민주주의 2.0'은 개방과 공유를 원칙으로 하는 웹 2.0 정신을 정치토론에도 적용시켜보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전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정치부 차장의 말 마따나, 그동안의 전임 대통령들이 '청빈한 29만원',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등의 발언으로 도움은 커녕 물의만 일으켰던 것을 생각하면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인 다양성을, 토론을 통해 제고해 보자는 그의 이번 행보는 새롭다. 이러한 '새로움'에 대해 그의 이해관계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5..

재미있는 일이다

유럽여행 때 이용했던 민박집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가봤다. 여전히 잘 되는 민박집들은 잘 되고, 다정다감했던 주인들은 다정다감했다. 다시 만나고 싶은 동생이 있었는데, 간만에 들어간 민박집에서 그 친구도 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든 즐거운 일이다. 특히나 나처럼 애정에 목마른 나그네에게는. 그런 점에서 사람 간의 관계라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 만남의 역사가 길거나 짧거나, 그 길이에 관계없이 기억이 나는 사람은 언제나 기억이 나게 되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들을 잊었으며 그 중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반면에 다른 사람들에게의 나는? 나는 그들에게 잊혀질 사람일까 아니면 영원히 기억될 사람일까. 좋게 기억될까, ..

글이 안 써진다

말 그대로다. 글이 안 써진다. 아마 안 써진다기 보다는 쓸 생각이 없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럴 때 넙죽넙죽 여러 날에 걸쳐 잘도 포스팅을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저런 필력이 나에게는 없다는 사실에 열등감도 느낀다. 솔직히 말해, 필력이 없다기 보다는 노력하지 않는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늘 어떤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두면서도 그것을 구체화하려고 더 생각하지는 않는다. 설계도를 그리고 집을 지어야 하는데, 나는 언제나 집 먼저 짓는다. 그러다보니 잘 지은 집보다 짓다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무너뜨린 집이 더 많다. 글쓰기란 작업을 얕보는 거다. 한낱 짧은 글일지라도 머릿속에 명쾌한 구조가 잡혀야 진도가 나간다. 굳이 구조가 없더라도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주제라면 글은 써진다..

42일간의 유럽여행 - (2) 출국 전 준비해야 할 것들

2008/08/27 - [2008, 유럽여행] - 42일간의 유럽여행 - (1) 작성 의도와 개요 출국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은 간단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이야기하면 비행기표, 여권, 돈, 자신감만 있으면 열흘 정도의 여행은 우습게 다닐 수 있다. 그 기간을 40일로 늘려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돈을 아끼기 위해 옷가지와 같은 몇가지가 추가될 뿐이다. (1) 여권 발급 여권의 경우에는 8월부터 기존의 종이여권이 전자여권으로 바뀜에 따라 대리발급제도가 폐지되었다. 이 말인 즉슨, 이전에는 가족이나 여행사를 통해 내가 직접 가지 않아도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게 안되고 본인이 직접 신분증을 들고 지방자치단체를 방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여전히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

DVD를 보다가, 삶에 대한 반성(?)을 하다

여전히 유럽 이야기를 한다는 게 우습지만, 그 인상은 마치 낙인과도 같아서 자자형(刺字刑)마냥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것 같다. 바람이 든 것처럼 보이겠지만, 돌아온 지 스무날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유럽을 부르짖는 것은 그만큼 나도 알게 모르게 얻어 온 것이 많다는 반증이리라. (어째 점점 글쓰기 스타일이 허세근석일세.) 유럽에서 건져온 그 '수많은 것들' 중에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카라얀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내놓은 음반과 1983년 새해 기념 콘서트 실황을 녹화한 DVD다. 고전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이렇게 앨범을 사가면서 찾아 듣는 이유는 단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나 자신이 악기를 연주하는 '허세'를 부려보고 싶어서일 거다. 정신과 육체가..